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녹산의 난 (문단 편집) ==== 당군, [[봉천]]을 나서다 ==== 8월 초 무공지역까지 당의 손에 떨어지면서 이제 남은 것은 장안으로의 진격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동북지역의 정병을 중심으로 하는 연군은 강력했고, 서북지역의 정병을 주축으로 하는 당군이라 해도 불안감이 적지는 않았다. 이에 당은 막판까지도 병력 충원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당이 공을 들인 것은 회흘이었다. 실질적인 총사령관을 맡은 곽자의는 회흘 출신 병사들이 정예병이니 추가적으로 징발할 것을 권했고, 회흘은 당의 청을 받아들여 추가적으로 4천여 명의 병사들을 엽호[* 인명이 아니라 [[투르크]]의 [[작위]] 야브구. [[친왕]]에 비견된다.], 장군 제덕에게 딸려 파견한다. 이때에 당숙종은 엽호를 회유하기 위해 잔치를 벌이고 바라는 만큼의 물품을 하사했고 도시 함락시 약탈을 허용했다. 광평왕 이숙도 또한 엽호와 의형제를 맺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회흘에게 대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12일. ||정해일, 원수 광평왕이 삭방, 안서, 회흘, 남만, 대식의 무리 20만을 지휘하여, 동쪽으로 향해 적을 토벌했다. - [[구당서]] 정묘일, 광평군왕 이숙이 천하병마원수가 되었고, 곽자의가 그를 보좌하였으며, 삭방, 안서, 회흘, 남만, 대식의 병사로 안경서를 토벌하였다. - [[신당서]], 정해일, 원수 광평왕 이숙이 삭방 등의 군대 및 회흘, 서역의 무리 15만을 거느리고, 20만이라 칭하면서, 봉상을 출발했다. - [[자치통감]]|| '''이로써 모든 병력이 합류하고 준비를 마친 당군은 장안을 향해 진격했다.''' 봉천 출격 당군 구성. <군사령부> * 숙종 무황제 이형 * 천하병마원수 광평왕 이숙(후의 당대종) * 시모군국/원수부행군장사 이필 * 천하병마부원수 곽자의 <군 실전지휘> * 전군: 4진이서북정행군병마사 이사업 * 중군: 천하병마부원수 곽자의 * 후군: 관내행영절도사 왕사례 * 그외 좌-우무봉사, 병마사급: 복고회은, 곽영예, 왕난득, 혼석지(혼감의 아버지), 왕중승 등 다수. <군 구성> * 당군: * 삭방진군 (평시 총병력 6만 4천) * 하서진군 (평시 총병력 7만 3천, 상당수 병력이 동관에서 소실되었으나 농우진군보단 상황이 나았다.) * 북정진군 (평시 총병력 2만) * 안서4진군 (평시 총병력 2만 4천) * 농우진군 (평시 총병력 7만 5천, 단 대부분이 동관에서 날라간 후라 평시 규모는 크게 의미 없다.) * 이민족군: 회흘 (기존 참전 병력(규모 미상) + 4천), 대식([[아랍]]), 발한나를 비롯한 서역제군, [[남만]] * 총병력: 실 병력 15만, 호왈 20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